두서없는 이야기2020. 4. 6. 12:05

1.

17년 여름부터 시작된 나의 일본 생활.

2년반의 부임기간, 많은 것을 이루고, 경험하고 돌아왔다.

 

여느 대한민국 공대생답게 평생 토익영어뿐이었던 내가 실무를 하며 일본어를 익혔고,

외국인치고는 제법 하네?라고 들을만한 실력이 되었다. 프리토킹이 되는 순간 회사에서 요구하지도 않지만

NLPT N1도 따놓고... 참 여러 곳에 여행도 다녀왔다.

 

어릴적부터 부모님께 역사교육을 많이 받아왔기에 그 영향이 강했겠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무척 싫어하는 일본에서 2년이 넘는 기간동안 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막상 가서 거주하며 느낀 일본은 생각보다 멋진 구석이 많았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선진국으로 그들의 근거있는 프라이드는 높았으며, 생활수준, 양식, 시민의식까지 부럽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역시 단순 여행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피부로 느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다만 현저하게 낮은 역사의식과 정치 참여의식, 맹목적인 매스컴 신뢰도 등 선진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뒤떨어지는 부분도 많았다. 어디든 뛰어난 점 떨어지는 점은 있기 마련이니.

 

어찌됐든 일본은 나에게 애증의 나라가 되었다.(무척 싫지만, 한국 이외 가장 잘 알고 있고, 가끔은 그리운 구석이 있는?)

 

2.

한편 복귀를 하기 2,3주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감염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일본은 올림픽 개최를 하기 위해 검사를 잘 하지 않는 유명한 나라이니.

 

37.5도 이상의 발열시 출근을 제한하는 회사의 방침에 발열로 출근을 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제법 있었다. 일주일가량 쉬고 출근한 그들과 이야기해보면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고... 아 역시 코로나 검사를 받기 힘든 나라구나... 그럼 코로나 음성 확진은 어떻게 받은거냐고 물어보니 의사의 진단 결과라고... 그리고 폐렴이긴 하단다. 

그러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괜히 내 컨디션도 안좋은거 같고 혹시 나도 이미 감염된건 아닐까? 만에하나 무증상 감염자라서 귀국 후 가족들에게 전파하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포심이 생겼다.

 

익히 들은것과 같이 일본도 한국도 공항의 인파는 여느때의 10%정도? 아주 적은 인원들 뿐이었다. 거짓없이 몸의 상태를 보건복지부에 보고한 후 2주간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어플을 다운받고 귀가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자가용으로 귀가 후 현재 1주일 이상 방에만 지내고 있다.

 

너무 다행인건 혹시 무증상 감염자일까 두려워 받은 검사결과 음성의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가족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모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이런 부분에 누구보다 확실하고 빈틈없는 가족들이라, 음성 결과를 받은 지금도 가족 전원 취침시에도 마스크 착용에 식사도 각자 따로, 특히 나의 식기는 아직도 소독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최대한 내 방에 문을 닫고 생활 중...)

 

3.

우리나라 외의 선진국에 꽤 오랜기간 거주하다보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선진국이고 잘 사는 나라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나는 원래 한국을 무척 사랑했지만..더더욱!)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들의 코로나 확산을 바라보며, 그들을 마냥 선망하며 우리의 것을 비난하던 그들을 비판하던 나로서는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위대함을 느꼈다. 사랑한다 대한민국!

나라와 민족을 위해 힘쓰시는 모든 분들, 응원한다. 이런 시기 여야, 한 마음 한뜻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과 이 와중에도 알력다툼에 힘쓰는 사람의 구분이 되는 것은 덤이랄까.

 

이따금 뉴스를 볼 때면 이해할 수 없는 이기주의자들의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같이 딱히 불특정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도의적 책임감에서 자체 격리를 빈틈없이 실시하고 있는 분들도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당분간은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혼자만의 시간도 보내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에겐 오랜만의 한국 귀국에 얼굴을 보자는 친구들의 연락이 오곤 한다.

"친구들아 나는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당분간은 SNS로 안부를 전하자!"

내가 괜찮다고 괜찮은게 아니라 괜찮지 않을 사람을 생각하는게 배려다.

모든 사람이 공동체 의식으로 배려하는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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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20. 1. 26. 00:43

직장인이 되고나서 느낀다.

대학생 때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용돈의 무게.

물론 그 당시에도 죄송하게 생각했지만 지금만큼 죄송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먹고 싶은거 사고 싶은거, 아니,,, 그게 아니지

분명히 엄마아빠는 하고 싶은걸 참는게 아니라

포기할 것들을 버려가며 뒷바라지 해오셨을거다.

 

내가 직장인이 되면 참 많은걸 해드릴 수 있을줄 알았다.

월급에 세금이 이렇게 많은지도 몰랐고, 돈쓸일이 이렇게 많은줄도 몰랐어.

집값도 비싸고, 차값도 비싸다.

 

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어.

받은 만큼 해드리지 못해 언제나, 많이 죄송해요 엄마.

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9. 10. 20. 16:45

1.

성장기에 접어들며, 아니 혹은 내가 인지하기 더 전부터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세 살 터울의 누나로, 내 누나라서가 아니라 그 또래보다 말도 빠르고, 심지어 본인의 생각을 일찍부터

펼칠 줄 아는 꼬맹이었던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누나에 비해서가 아니라, 나는 보통 애들보다 말도 살짝 느리고, 성장도 살짝 느렸던 것 같다.)

 

나에 비해 타인에 공감능력이 탁월하고, 분위기 파악을 잘하던 누나 덕에 나도 남자치고 어디가서 눈치로

빠지진 않는데, 누나 덕에 이점도 있었지만, 이제서 돌이켜보면 조금 안좋은 점도 있었으려나 싶다.

예를 들어, 애어른이 될 수 밖에 없는 테크트리였다는 거?

 

2.

내가 인정하는 누나가 일방적으로 스트레스 받아하는 대상이 이 세상에 몇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아버지. 우리 세대 여느 아버지들과 같이 무척이나 가부장적이며, 유사 우리집 김정일. 왕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분이시다.

또 다른 한 분은 어머니,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 인자하시고 지혜롭지만, 가정과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커 항상 아버지에게 맞춰줘버릇하는 분이시다. 누나는 이 두분을 보는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3.

나는 20살 이후로 집에 살지 않는다. 대학교 기숙사에 자취생활, 더불어 군대, 졸업하며 별도 취준생활 없이 바로 취직해서 사택에 거주하다가 지금은 회사에서 일본으로 주재생활 중이다. 다만 이따금씩 집에 가서 머물다 보면 부모님의 그 작은 갈등이 나에게도 무척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때면 집에서 항상 지내오며 그것을 지켜본 누나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1년 내내 집에 살면서 지켜봤으면 상당히 짜증났을 수도..

 

4.

이건 내가 모든걸 걸고 자신할 수 있는데, 어머니의 인성과 지적 성숙도면 지금 아버지 외에 다른 더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더 행복했으면 행복했을 것이다. 반대로 아버지는 지금의 어머니나 되니까 맞춰주며 살아줬지,,,

 

5.

결혼에 적합한 사람(결혼을 해도 좋은 사람) :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내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 사랑을 주고 받을 줄 아는 사람.

결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가능하면 혼자 살았으면 좋겠는 사람) : 모든 선택의 기준이 자기 중심적으로 사랑을 주거나 받을 줄 모르는 사람.

 

이 외 수없이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난 아무리 봐도 아버지는 혼자 살았어야하는 사람같다. 가끔 왜 결혼하셔서 멀쩡한 엄마랑 누나에게 고통을 주시는걸까?하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가족에게의 배려부터, 가족 갈등 해소 능력 제로, 총각인 나와 자꾸만 비교하는 용돈과 생활 패턴의 비교까지.

 

6. 역시 사람의 성향은 내가 누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듯이 가족, 친구, 동료 등 내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내 나이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신 울 아버지의 행동 장애(라고 해도 될까?)를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좋을 땐 좋으시지만.

 

평생을 회사에서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오시느라 고생하셔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따금씩 발생하는 갈등으로 나의 그 감사함을 전달드릴 기회조차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 아버지 도대체 왜 그러세요 라고 하게 되니)

 

회사에서 일본 동료들이 왜 결혼 안하냐고 묻는다.

"아직 준비가 안되서요"

"무슨 준비요?"

"정신, 물질적 준비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혹여나 내가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지 않을 준비"

"피식. 너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데, 그런건 결혼에 필요하지 않아. 그냥 하면 돼!"

 

네네네. 너나 잘 하세요. 그건 그쪽 생각이고, 나는 내 생각이 있구요.

시끄럽다고, 나는 아직 결혼에 적합하지 않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지는건 생각하기도 싫다.

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9. 10. 14. 23:29

1.

조국씨가 사퇴를 했다. 검찰 개혁을 하겠다던 그.

내 주변의 모든 친구, 선후배들의 한탄이 담긴 카톡이 끊이질 않는다.

카톡 방을 가만 보고 있자니 마치 나라가 망해가는 것 같다.

 

'시기야 안타깝지만 결과적으로 사퇴를 하는 건 맞다고 생각하는데...'라고 진짜 내 생각을,

최근 내 또래 젊은이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면 정신나간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변한다. 너같은 애가 태극기가 되는거여~

 

1.5

친구 중에 한놈이 취업준비를 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사상이 장난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북한과 내통중이며, 미사일 쏴달라고 하고 있다고...

"꼼단이 너같이 배울만큼 배운애도 그걸 모르는데 우매한 사람들은 어떻겠냐"

라고 할 때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2.

그 반면 집에 가면 아버지의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따갑다.

미쳐버리겠다 아주. 

요즘 젊은이들은 태극기 부대를 욕한다.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이들을 욕한다.

난 내 또래의 젊은이들과 정치를 이야기할 때와 이따금 택시를 탔을 때 몇몇 기사님과 정치이야기를 할 때

같은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

 

3.

색깔론이 아닌, 순수하게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우리편은 괜찮고 너네편은 안된다는 내로남불 비스무레한 모습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는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풋과 아웃풋이 정확하지 않은 정치를 이야기 하면서, 맞고 틀림을 기준으로 이야기 하는게 지쳐간다.

다를지언정 서로 모르는 이야기와 의견을 주고 받는게 중요한건데, 조금씩 그렇게 될까.

이웃나라처럼 모두가 포기하고 관심 끄는 방향으로만 안갔으면 좋겠다.

 

4. 그래도 기를 쓰고 희망적으로 보자면. 검찰의 썩은 부분을 국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너희들도 정신 차리라는 국민의 메세지를 표현했고, 그리고 개혁을 위한 움직임의 시발점이 있었다는 것, 그 시발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씨를 지지한다.

 

또한 조국씨를 지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사회의 기득권이 본인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하게, 생활 속 깊히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 그들 기득권이 살짝은 긴장하게 됐다는 것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특혜를 개혁하고자 한다는 사람이 특혜를 아무렇지 않게 받고 있었다는 것? 그것을 왜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가?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쪽 사람들도 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으니까, 내 사람의 부정과 비리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거니까?

조국씨의 검찰 개혁은 지지하지만, 결국 그 역시 바뀌어야될, 특권층, 기득권이다. 나는 그의 사퇴 역시 지지한다. 이 모든 움직임으로 앞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저들은 우리를 바보로 생각하니까.

하지만 먼 훗날 봤을 때 '개선을 위한 그 어떤 시도도 없었다'라는 것 보다는 '그들은 바꾸기 위해 또 한 번 노력했다'라는 쪽이 좋지 않은가.

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9. 9. 8. 18:32

일본에 와서 놀란건 역사,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가끔 무시한 적도 있었다. 수준 이하라며..

어느 날 친한 친구, 동료들에게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물어보니

"관심을 가져봐야 바뀌는게 없으니까 모두들 포기한게 아닐까?

 물론 이유야 저마다 다를테니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엔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요즘 한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씨 문제로 아주 언론이 뜨겁다.

그의 딸이 고등학생 시절 이미 논물 제1저자로 올라갔던 것,

불공정하게 수차례의 장학금을 받아 일반 시민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을 준다는 것,

어머니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총장상을 받았는데

그 총장이 본인은 준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 등.

 

이 외 펀드 등 여러가지 비리가 있는 사람은 법무부장관으로서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조국씨의 부적합함에 대해 뜨겁게 주장하고 있던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 운전을 저질렀다.

 

과거 마약, 성매매 관련해서 이슈도 있었고,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매스컴에 의하면

3억을 호가하는 벤츠 차량이었던 것 같다.

사고 후 운전자를 바꿔치기 하려한 점,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며 1000만원에 합의하자는 등의 언행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안타깝다. 보수며 진보며 나라를 아름답게, 부유하게,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서로의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속한 집단이 더 큰 힘을 얻고,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나라가 아니라 본인이 더 부를 창출하기 위해 직업으로서 일을 하고 있는 자들로 느껴진다.

어느 진영이 여당이 되든,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든 이 나라는 바뀌지 않는다.

 

요즘 생각이 든다. 일본인들이 왜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옹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겠달까.

점차 한국 정치인들도 세습을 거듭하고, 법은 최소한의 상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장치로서 의미보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울타리로 느껴질 뿐이다.

본인들은 동일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으니까.

 

좌우, 색깔을 떠나서 어느쪽이든 모두 특권의식을 가지고, 본인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당연하다 느끼고 있다. 역사 속 계급은 없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 끔찍하다.

 

이따금 나는 월급을 받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며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데, 저기 어딘가에 태어날 때부터 상속받은 돈이 셀 수 없이 많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자만으로, 물가상승만으로 나의 연봉보다 많은 소득이 있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이 참으로 공정하지만은 않구나라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한 우울함은 결국, 30년도 전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며 인질극을 펼치던 지강헌의,

70억 횡령한 사람보다 500만원 훔친 내가 왜 더 죄값이 큰 것인냐는 불만에 까지 이르른다.

 

온 힘을 짜내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면, (친일파를 제외한)지금의 부를 창출하기 까지 그 가족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 소유 재산을 전국민이 균등 분배하여 소유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없는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진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없는 것이라든지, 지금의 부를 이용해서 중소기업을 괴롭히고 짜내 본인들의 부만 창출하는 것에 대한 불만등은 별개.

 

그동안 당연시여겨지던 기득권의 특혜가 이렇게 하나씩 사회에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정화되가는 과정이 아닐까?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되고 그 죄값을 국민들이 알고 분노하는 것은 한 대통령이 탄핵된다는 것 이상의, 그동안의 역대 대통령들과 그 주변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려왔던 특혜들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가 생겼다는 것이고 나는 그런 의미에서 조국씨나 장제원씨의 기사들도 무척이나 반갑다.

 

잘못된 특혜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고,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보수고 진보고 정말 국민을 위한, 국가를 위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색깔론도 없어지고, 무분별한 다툼과 헐뜯기도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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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9. 9. 7. 13:11

회사의 일본인 동료가 묻는다.

"정상~ 한국인들은 아직도 개고기를 먹는다는게 진짜야?"

"응 나는 먹지 않지만, 먹는 사람들이 있지. 근데 그게 왜?"

"아니 으~~~ 개를 먹는다는건 으~~나도 먹진 않지만 일본인들도 고래를 잡아먹어서 문제가 되긴하지"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이라서, 혹은 생태계를 위해 지양되는거랑 단순히 먹는다는 자체만으로 비판받는건 조금 다른거 같은데... 뭐 아무튼 나는 식문화가 익숙하지 않다고 비판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 나도 일본에서 개구리나 악어,, 닭고기랑 말고기를 회로 먹는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

.

.

 

나는 어릴 적부터 강아지를 키웠고, 강아지를 아주 사랑한다.

함께 울고 웃고 내 가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고기 문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반대하지 않으니까 너도 반대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친구를 어떻게 잡아먹냐고. 선진국에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들은 우릴 야만인으로 본다"고.

 

차라리 내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안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제발 외국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과 우린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가졌다며 비난한 적이 없다. 왜 아무 잘 못 없는 우리 이웃이 손가락질 받는게 당연한 건가?

 

회사 동료가 퇴근 후 회사 근처 이자카야에서 닭튀김에 열광하며... 각종 모듬 꼬치류를 주문하며... 닭과 말의 회를 먹으며...나에게 개고기를 먹는 문화의 심각성에 대해 물어본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치느님 치느님 찬양하는 사람은 전혀 아무렇지 않고, SNS에는 스테이크랑 삼겹살 바베큐 파티 사진이 난무하는데, 적어도 보신탕 먹으면서 SNS인증 하는 문화는 없지 않은가?

 

음식은 하나의 문화다.(그래!!나에게 물어본 네가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메뚜기를 박아서 먹을때 나도 적잖이 놀랐다고!)

그리고 문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이전세대보다 현 젊은세대가 개고기를 덜 먹듯이 조금씩 소비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없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개인적 호불호에 의한 흐름이어야하지 먹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팽이는 아무렇지 않게 먹으면서 번데기에 치를 떠는 그들의 이중성도 이해하는 넓은 이해심을 가졌으면서, 왜 당장 우리의 식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 나에게도 저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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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9. 6. 22. 14:16

1.

내년의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작년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언젠가는 궁금할 것 같다는 마음에 티스토리를 시작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정보를 제공하고,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어디에 뒀는지 잃어버리지 않는 나 만의 일기장이 필요했다.

 

몇개월에 한 번 생각날 때 들어오는 편이지만,

이전에 썼던 글의 오글거림도 나름 괜찮고,

나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 이 때 이런 생각했었구나 맞아 라고 생각하는 것도 적지 않고.

 

일본에 처음 와서 살기 시작할 때,

대학교 나온 애들이 토익점수가 500점도 안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고,

유레카를 몰랐던 일, 한국 위치도 제대로 모르는 애들...

속 한 편으로 무시했었다. 바보 라고.

 

그런데 얼마 전 회사 동료의 초대로 주말 소풍을 갔는데

이 일본 동료들은 산책을 하다가 옆에 핀 꽃을 보고

어머 아직 필 때 안됐는데 이거 핀거봐~ 라며 자기들끼리 좋아하더라

 

아... 나는 길거리의 꽃의 이름도 모르는구나.

언제 피는지도 모르는 걸.

 

사람마다 중요한게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말로는 참 잘 알고 있으면서, 다른이를 너무나도 쉽게 생각했구나 싶더라.

 

2.

일본 생활이 당초 예정보다 반년 정도 연장되었다.

타국에 사는게 참 좋은 점, 나쁜 점이 있는데

일단 지금의 나에게는 좋은 점이 더 많은거 같다.

그래서 연장을 권유하는 회사와 말을 잘 해서 연장하기로 했고.

한국에서 너무 길게 연장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라 반년 연장으로 합의 완료.

 

3.

내가 어릴 때는 나이 서른의 어른이 되었을 때,

너무 멋진 집에서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차 한잔 즐기고,

멋진 차로 와이프와 드라이브를 하고 있을지 알았다.

 

현재 한국나이 31살. 내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와이프? 여자친구도 없다.

 

마무리가 마음에 안드는군.

하지만 지금 편도염인지 열이 많이 나니... 이정도로 마무리하자.

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8. 7. 16. 16:11

1.

노래는 잊고 살아가던 내 기억을 깨우고, 그 당시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지금 노래를 듣고 있다가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어릴적의...^^;


2.

나는 애기때부터 울지도 않고, 표현도 안하고, 말도 잘 안해서

가족들이 말 못하는 아이일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감수성도 별로 없고,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는데,

그런 나 조차도 감수성에 허우적 거릴 때가 있다.

아니, 잦아지고 있다.


그립다. 돌아가고 싶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시간도 내일, 한 달 뒤, 내년, 10년 뒤가 되면

눈물 쏟아질 정도로 그리운 시간이겠지.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기보단 지금을 뜻 깊게 살아야겠지.


3.

어느덧 10년이 다되어가지만... 대학교 2학년 때 당시 편찮으셨던 외할아버지께서 병석에서 그렇게 나를 찾으셨다고 한다. 자식 얼굴도 못 알아보셨다는데...그 와중에 한 다리 건너 손주를 찾으셨다니 너무 감사했지.

하지만 학교 시험 기간에, 동아리 회장이라 연주회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연주회, 시험 끝나고 문병 꼭 가겠다고 말씀드리곤 했는데... 


결국 연주회, 시험이 다 끝나고 어머니께 "엄마 병원 주소 좀 알려주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드렸더니 이미 울만큼 울어서 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들려왔던 "놀라지 마, 사실은 할아버지 어제 돌아가셨어"라는 말. 

오랜기간 힘들게 준비한 것들 잘 알고 계시니까 집중해서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일부러 연락 안주셨다며.


눈물이 없던 나조차도 울부짖게 만들었던 너무 슬프고 힘들었던 일이지만, 그 덕분에 다시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할 수 있지 않은가(도덕적 이해 가능 범주 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 인생, 삶이자 경험이고, 조금이라도 빨리, 덜 아프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축복같다.

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8. 1. 22. 23:13

2년간의 본사 근무 확정되고 짐을 정리할 17년 8월 무렵에 마지막 글을 썼고,

9월 20일 비행기로 일본에 와서 어느덧 18년 1월...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일단 시간 정말 빠르다.

옛 말 틀린거 하나 없다고, 나이에 비례해서 시간이 흐른다더니,

앞으로 나의 시간은 지금까지보다 얼마나 더 빠른 속도로 흐를 것인가 생각하면 무섭기 까지.

 

평생 외국어라고는 영어, 영어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공대생이었기에(그 마저도 토익이지만)

일본어는 중학교 때 배운 제2외국어가 전부였던지라

참... 바보(굉장히 순화한 표현이 바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4개월이었다.

 

알아도 모르는 것, 모르는 건 진짜 모르는 것 이었던 시간.

발 등에 불 똥 떨어진 듯 출근 전 일본어 학원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회화라고는 인사 밖에 할 줄 모르던 상태에서 그래도 참 많이 발전했다. 뿌듯해도 되겠니?

어느덧 15년 이상 흘러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릴 적 부모님이 시켜주신...

한자 공부와 일본어 공부 덕에 그래도 이 정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무척 감사하다.

 

오늘은 요코하마에 눈이 근 몇년 만에 많이 내린 탓에 일찍 퇴근을 했다.

자연히 간만에 노래도 많이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티스토리에 글을 쓸 여유도 찾을 수 있었네.

지금 bgm은 피아졸라의 invierno porteno, 역시 겨울엔 항구의 겨울...이거지!

오랜만이다 가슴이 울컥 울컥 하네.

 

일본은 회사생활에서 미루어봤을 때 여러모로 선진국이다.

직장 4년 차인 내가 알아봐야 얼마나 잘 알겠냐마는,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10년 그 이상 한국을 앞서 있다.

 

나는 한국에서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완전하게 같지는 않다만 유사 제품을, 정확하게 같은 개발

프로세스 내에서 개발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업무 강도와 압박은 절대 같지 않다. 그 차이는 바로 시스템적 보완 유무에 있다.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가 일을 열심히 하여,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게 끔 보완하는 시스템과,

유도리라는 미명 아래 정도를 지키는, 프로세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묵살하고 침해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양아치 짓을 일삼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치 않는 시스템의 차이 정도랄까.

물론 늦을 뿐, 아마도 10년~15년 후엔 한국의 기업들도 이러한 형태를 가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도 근로자 중 한 명으로서 열심히 일해서 발전하는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뭐 돌아가는 이야기지만, 어릴 적 내 꿈은 수학자였고 수학만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차차 나이를 먹으며 부유하지 못한 가정 형편을 보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어린 눈에 그저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러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학부 1학년 시절 내꿈은 중공업 회사에 가서 배를 설계하는 것이었고

물론 졸업할 무렵엔 그저 대기업.. 대기업.. 주위 친구들과 같이 대기업을 원하는 노예가 되었다.

 

물론 원하는 회사에 낙방하여, 플랜B라고 해야하나? 합격한 회사 중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곳이

지금의 직장이고,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본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새옹지마라지. 처음엔 플랜B로 결심한 직장생활이었다.

4년차에 이르러 이제 와서지만, 한국의 대기업에 취업했던들 지금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기에

지금의 삶에, 현재에 나는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단순이 외국에서의 생활을 함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생활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일본은 정말 강한 나라다. 일본을 그토록 미워하던(는)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니 정말 강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 모든 경험이 모여 나의 힘이 되고 경력이 되어 단단해진다면, 마침내 한국에 돌아가는 날 누구보다 좋은 선배가

되어 많은 후배 사원들에게 힘이 되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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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꼼단
두서없는 이야기2017. 8. 13. 15:00

1. 작심삼일을 꿈꾸며 목표로 했던 글도 보이고.
이별 후 손발 오그라들 글도 있고.
재미있다.

2. 근황부터 적자면 취직 후 어느새 삼년차가 되었고
다음달이면 본사에 가서 근무하게 되어
이년 정도 타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3. 지금은 방 정리 중인데(이 역시 오랜만)...
정리 중에 갑자기 기타가 치고 싶어졌고(이는 더 오랜만)
기타 줄을 퉁기다보니... 학생 때 목표였던...
기타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리리라는 다짐이 떠올라..
티스토리 생각이 났다.

4. 부디 2018년에는 아니..17년 말 부터 타지 생활에서는
블로그를 통해 내 자신과 하루를 돌아보는 횟수가
잦아졌으면 좋겠다.

5. 일단 방정리부터 마무리하고. 산책을 하든 기타를 치든 방 구조를 바꿀 계획을 세우든 하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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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꼼단